P31 빗자루로 쓸어 휴지통에 버린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생각지 않는 일이다.
바람이 불면 바닥에서 먼지가 보얗게 피어 오른다. 고약한 냄새가 떠돈다.
냄새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은 모두 같다.
허허. 와타나베의 기숙사 내부를 표현한 하루키다. 내가 다닌 학교의 기숙사에 목요일이나 금요일마다 놀러간 기억이 소환되었다.
주로 부산,영천,김천,포항에서 온 친구들이 4인 1실 또는 2인 1실에서 지냈는데 목, 금요일 점심시간에는 기숙사 쪽문에 위치한 교회에서
호떡을 구워서 기숙인?들에게 나눠주며 교회로의 유입수?를 늘린것 같다.
묘하게 하루키가 표현한 그 이미지와 아주 많이 겹친다. 핀업걸 까지는 아니었지만 혈기왕성한 나의 친구들도 맥심 잡지 하나 정도는
꼭 책상에 꽂아두었던 기억이다. 하루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어. 그대가 존대하고 있다는걸 계속 기억하겠어. 고마워 허허.
P34 돌격대는 세수하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빨을 하나하나 뽑아서 닦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허허. 간혹가다 이런 코믹 멘트는 정말 독자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상실의 시대는 한페이지 한페이지
장인정신으로 한땀 한땀 실꼬매듯 적어내었다고 한다. (민숙초이). 그래서 34페이지의 지리한 마무리에 이런 위트를 집어 넣었다 보다.
나 또한 마흔을 전후로 세수 시간이 길어지고 있따. 이빨 사이 하나하나에 붙어있는 치석들을 3종세트 칫솔로 도려내지 않으면 삶을 영위할수 없으니 허허.
P149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후에 배낭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챙겼다. 그리고 잠이 올때까지 브랜디를 마시면서 읽다가 만 (마의산)을 마저
읽었다. 그래도 가까스로 잠이 든것은 새벽 한시가 지나서였다.
잠이 올때까지 나도 인터넷 서핑이나 소설따위를 읽곤 한다 그래도 가까스로 잠이 드는 것은 꽤 오랜시간이 지나고 나서다.
하루키의 이런 섬세한 결말의 문구들이 내게는 소중하다. 소설가들 혹은 소설을 자주 접하는 이들의 디테일함은 이런데서 나오는 건가 싶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 한번 브랜디 공장에 가서 기분 좋게 알딸딸한 웃음을 지을수 있을까. 꼬냑 까냑..
P151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지고, 바람에 실려온 습기가 피부에 따갑게 느껴졌따. 계곡 하천을 따라 버스는 그 삼나무 숲속을
오랜 시간 동안 달렸다. 온세계가 끝없이 삼나무 숲으로 뒤덮여 버린게 아닌가 하고 느껴질 무렵에야 겨우 숲이 끝나고, 우리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곳에 다다랐다.
- 청남대가 생각났다. 그 나무가 삼나무인지 메타세콰이이언지는 알바가 아니다. 꽤 오랜시간 울창한 저온 다습한 프레쉬한 길을 지나야 대통령이 지낸
협곡속의 섬마을 같은 곳에 다다랐다.
P152 운전기사는 길가에 서서 소변을 보았다. 끈으로 묶은 큰 골판지 상자를 차안으로 들고 들어왔던 쉰 살 전후의 햇빛에 잘 그을은 남자가
등산을 할거냐고 내게 물어왔다. 귀찮아서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 귀찮아서 그냥 그렇다고 대답할때가 왕왕있다. 허허. 그런 찰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캡쳐해서 이런 장면에 써먹는 하루키 그대는 정말 오마주할수 밖에 없는..
P177 그녀는 그러면서도 미셸을 매우 능숙하게 연주했다.
좋은 곡이야. 나, 이곡이 좋아. 하고 레이코씨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넓은 초원에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것 같은 곡이야.”
- 허허. 넓은 초원에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보고 미셸을 들었어야 했다. 민숙 초이가 이 앨범을 100번 들었고 그중 미셸이라는 곡이 좀 특이하다고 출근길에 생각을 하긴 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아마 출근길에 나를 위로할수 있는 에너지를 갖지는 못했던게 아닐지. 이런 새벽즈음에 고온 다습한 열대기후의 아래 조용한 날에는 미셸이라는 곡이 들린것인지.
넓은 초원에서 부드럽게 비를 맞으며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이 노래를 들을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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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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